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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 종합대상 수상작 고장난 라디오

sungmin
2021.05.24 19:06 67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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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라디오

 

사그작, 사그작.

 

하나, 둘 밟아보는 나뭇잎 소리가 주변에 퍼졌다.

집 앞 둘레 길을 따라 오솔길을 걷다보면 늘 보고 싶은 할아버지가 기억 속에서 떠오른다.

할아버지도 이런 산길을 따라, 홀로 그 먼 곳에서 도망쳐 내려오셨을까?’

할아버지 모습이 문득 머리 속에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그 때로 돌아가는 듯 하다.

 

꼬옥.

 

할아버지는 내 손이 멀어지기라도 할까, 두 손을 꼭 잡아주셨다. 그리고는 부쩍 마른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남기신 할아버지는, 다시 입을 열고 찬찬히 내용을 이어 나가셨다.

 

내다보면, 거북등처럼 작은 언덕이 하나 보인단다.”

“...평안남도 진남포 화도리.”

 

 

고향 이야기를 하는 할아버지 모습에는, 그리움과 아련함이 있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시는 말만 들어도 얼마나 고향이 그리운지 충분히 알 수 있다.

 

할아버지는 나를 앞에 앉혀 놓고는 늘 고향 이야기를 해주시곤 하셨다.

이야기는 재밌는 옛날이야기처럼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고 나의 궁금증에 할아버지께서는 더욱 신이 나는 듯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셔서 할아버지의 역사 속으로 실타래처럼 엮여 할아버지 고향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늘 같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하셨다.

했던 말씀을 또 하시곤, 또 하시곤 하셔서 우리 아빠는 웃으며 할아버지 이야기를 고장난 라디오같다고도 말하셨다.

나중에야 확인된 사실이지만 이미 할아버지는 중증 치매 상태셨다.

그 당시 나는 치매가 뭔지 잘 몰랐지만 그러고 보니 가끔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신 거 같다.

할아버지는 반복적인 이야기로 고향에 대한 기억의 끈을 놓지 않으셨던 것이다.

 

짝짝꿍 할아버지.19세 때에 고향에서 남쪽으로 도망치듯 내려오셔서 전쟁과 분단에 막혀 70여년을 친가족 없이 외롭게 살으셨다.

나는 단 하루, 아니 한 시간도 가족이 없다면 상상하기도 힘든데 우리 할아버지께는 수많은 세월을 어떻게 견뎌내셨을까.

 

하지만, 짝짝꿍 할아버지께서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을 못 가보시고 작년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니 난 내가 실향민 3세로 존재 한다 는 것을 실감했다.

 

꼬깃꼬깃 접힌 종이돈을 지갑에서 꺼내 손녀 용돈이라고 건네주시던 할아버지의 손끝이 떨리는 것도 나는 눈치 채고 있었다. 이건 건강이 좋지 못하단 것이다.

용돈에 이끌려 할아버지 앞에 앉은 나는 고장난 라디오를 다시 들어야 했다.

 

할아버지의 반복되는 이야기 줄거리 중 하나는 북한 이야기였다.

만약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북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셨다면 나에게 북한은 교과서 한쪽 페이지에 나와서 무심코 넘기는 그저 하나의 나라라고 받아드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고향인 북한은 우리와는 다르고 먼 국가가 아닌, 우리와 같은 땅덩어리에 살고 있는 같은 민족이고, 언어나 생김새 등이 우리랑 다를 게 전혀 없었다. 그건 마치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로 지역을 구분하는 느낌이다.

 

우리 할아버지가 북한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북한에 사는 사람들이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저 우리는 한때 전쟁으로 인해 갈라진 사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는 그 전쟁을 피해 이 곳으로 온 것이다.

 

할아버지는 고향을 떠나 온지 이미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고향의 골목과 들판, 그 밖에 소소한 것들을 다 기억하고 계셨다.

 

꼴깍.

 

마른침을 넘기면서 까지 고향이야기를 하실 때 할아버지의 모습은 매우 진지 하셨다.

 

우리 오빠와 같은 10대의 어린 나이에 고향과 가족을 떠나 슬픔과 두려움을 견뎌내고 홀로 산길을 걸으셨다는 건데,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할아버지는 매우 대단하신 분이라고 느껴진다.

우리 오빠는 맨 날 엎드려서 핸드폰 게임이나 하는데...

 

할아버지는 고향의 모든 것들을 그리워 하셨다.

나는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것이 매우 속상하고 마음이 아렸다.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를 대신해서라도 북한 땅에 발을 디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운 일이 아닐지는 몰라도 통일을 하는 날이 어서 와서, 내가 북한 땅에 발을 디딘다면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가 내려다보시며 미소 짓지 않으실까?

이제 우리 가족들 곁에 할아버지는 안계시지만, 내 마음속에 영원히 물들어 계신다.

 

할아버지!

저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심정을 느꼈어요.

항상 주말마다 놀러 가면 반겨주시고, 전화를 하면 항상 포근한 목소리로 반겨주셨던 할아버지께서 하루아침에 사라지셨다는 건 우리 모두에게 감출 수 없는 정말 큰 빈 자리와 같아요.

그 슬픔을 글로 담기에는 매우 어려울 만큼 말이에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저희 곁에는 잊을 수 없는 많은 여운들이 남았어요.

할아버지 댁 대문과 마당, 방의 구조, 냄새, 할아버지의 침대의 촉감, 할아버지의 부드러운 손등과 목소리 등등 아직도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지곤 해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해주셨던 고향 이야기도 인상깊게 남아요.

아직도 고향 이야기를 하시던 할아버지의 진지한 모습과 그리워하는 눈동자가 눈앞에 아른거려요.

항상 저를 마주보고 얘기를 해주셨던 할아버지의 그리운 고향.

그 고향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하시고 돌아가셔서 매우 안타깝고 슬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대신이라도 할아버지의 고향 땅에 가보고 싶어요.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서, 통일이 된 모습을 하늘에서 바라보셨으면 좋겠어요.

 

-할아버지 손녀 김수리 올림

 

 

이번 주말에는 아빠와 상의를 해서 현충원에 들러 할아버지를 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서울에 살지만 할아버지는 순국선열이 되어서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셨다.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고향과 더 멀어진 것 같다며 우리 아빠도 내내 마음아파 하셨고 나도 그랬다.

 

드넓은 파란하늘을 이불삼아 같이 배위하신 짝짝꿍 할머니와 함께 현충원의 푸른 잔디에 앉아 고향땅을 바라보고 계실 짝짝꿍 할아버지.

 

그럼 통일이 되어서 이산가족들이 모두 만나고, 대한민국이 넓어지며 더욱 발전하는 그 날을 기다리며, 이 글을 마칠게요.

할아버지,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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