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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환희
2023.10.29 18:42 49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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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김지영

 

 멀리서 보면 역사의 거친 격동기를 지나갈지언정 막상 우리네 삶은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무던이처럼 당장의 앞에 놓인 하루하루를 부지런히 살아간다. 그저 앞만 보고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그저 그런 보통의 사람들 가운데 내가 있다. 개울물이 흐르듯, 구비진 계곡과 높은 폭포를 흐르듯 나 또한 똑같은 하루를 지내고 있다. 일상의 평안과 시험을 치르듯 겪어내는 작은 시련과 갈등들, 굽이쳐 흐르듯 크게 울리는 변화와 개혁의 흐름을 하루에 뭍어버려 때론 모르고 지나치고 혹은 온 몸으로 느끼며 그렇게 샘에서 바다를 향해 끝없이 항해하는 물과 같이 생이라는 것을 살아가고 있었다.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시간을 지내는 동안, 어머니 역시 세월이라는 자연에 육신과 정신을 맡기고 늙음과 죽음을 맞이하고 계셨다. 그렇게 이별의 시간이 우리들 곁으로 조용히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나에겐 어머니앞에 놓여진 시간이 짧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 온전히 바른 정신으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기회가 많았다.

옷핀으로 단단히 바지춤에 달아놓은 현관열쇠와 가방에 함께 꽂힌 경로우대 교통카드와 신분증이 어머니의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어린 시절을 함께 지낸 동네 친구의 이름을 입에만 맴도실 뿐 차마 내뱉지 못하실 때에도 그저 오랫동안 못 만나서 그러려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수술하신 다리를 빗길에 넘어지셔서 한참을 고생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에도 그저 미끄러워서 생긴 사고려니 하고 넘어갔던 것이다.

흐릿해지는 기억 속에 당신이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는데도 나는 그러려니라는 익숙함 뒤에 숨어 어머니의 병세가 완연히 짙어지고 있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 어쩌면 부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 삶이 힘들다는 핑계를 대고 있었다. 혹은 상실의 불안과 이별의 아픔, 어른이라는 무게감으로부터 회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는 엄마앞의 작은 아이로 남고 싶었나 보다.

 

추석을 앞둔 날, 명절준비에 나서신 시장 어귀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제야 내가 외면해온 것들이 선명히 다가왔다.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한 순간 무거워지는 마음과 함께 나는 어머니의 보호자가 되어 지하철을 타고 병원을 갔다.

대목을 앞둔 북적이는 지하철, 맞은편 의자에 한껏 웅크린 채 어수룩하게 앉아있는 낯선 노인을 마주했다. 어머니. 나의 미래다. 한층 더 무겁게 다가온 현실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의 검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안심을 주려는 의사의 따뜻한 목소리와는 달리 내내 긴장하신 어머니는 간단하고 질문에 생각의 의지조차 보이지 않으셨고 그저 내처 모른다만 되풀이하셨다. 기대와는 다른 대답과 태도에 분위기는 어두워졌고, 그에 따라 마음도 묵직한 추가 달린 듯 깊숙하게 가라앉았다.

배움은 짧아도 삶의 질곡을 지내며 쌓아온 경험으로 늘 삶의 정답지였던 어머니에게서 더 이상 모범답안이 제시되지 않았다. 두려웠다.

그러나 나의 흔들리는 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엄마를 다독였다. 아기처럼 어려지신 엄마는 표정과 말투, 눈빛 하나 하나에 폭풍 앞의 꽃처럼 흔들리시기 때문이다. 아기처럼 어려지신 엄마를 다독여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의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낯설어진 늙은 엄마를 확인한 속상함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현실을 외면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자위했던 나의 미성숙이다. 완연해진 병세를 본 두려움이었다. 다가올 상실의 불안, 현실에 마주할 무거운 책임감이었다. 나는 마주해야만 했다. 현실을, 삶을, 자연을

 

탄생의 기쁨에 가려 미쳐 알아채지 못한 것이 바로 죽음이다. 어쩌면 두려움과 무지로 외면하거나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은 여지없이 생과 사의 짝을 주었고 그것을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세와 태도이다.

 

먼저, 늘 깨어있어야 한다. 황무지에서 돋아나는 자그마한 싹을, 새벽을 가르는 서늘한 바람이 말해주는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순리를 따르려면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반복에 속아 익숙해지지 않아야 한다. 늘 깨어있어 주변의 소소한 것들이 얘기해 주는 변화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세월을 탓하는 것조차 아까우리만큼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그러기에 삶의 모든 면을 기꺼이 맞이하며 내게 주어진 하루를 충실하게 살면 된다. 당장의 삶의 무게가 내 어깨를 짓누른다 해도,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삶은 흐르는 강물과 같이 계속 이어져 있고 어떠한 핑계와 회피로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더불어 나를 있게 해 준 주위를 둘러보며 살아야 한다. ‘라는 존재가 있을 수 있는 것은 부모가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갓난아기를 돌보고 길러 바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돌보아주었던 부모의 노고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긴 세월 그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무수한 수고를 마땅히 돌아보아야 한다. 하여 어버이가 쏟았던 시간의 크기만큼 성인이 된 자녀는 부모의 마지막이 존엄할 수 있도록 잘 보살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지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나도 결국 그 길을 걸어가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웃과 사회는 가족의 돌봄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크고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 제도와 복지를 마련해야 한다. 소외되고 외면받는 이가 생각지 않도록 보완하며 도와주어야 한다. 한 사람의 삶이 존엄할 수 있을 때, 가족이 이웃의 행복과 평안, 소소한 즐거움이 나누며 매일의 나를 채워가면 된다. 나의 가족과 이웃, 사회의 안녕을 채워가면 된다.

 

내 앞의 삶에 매몰되지 말고 변화의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또 그들에게 관심과 소통을 나누자. 그러면 우리는 성장할 것이다. 또한 소중하게 주어진 삶을 완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게 주어진 생을, 시간을 지나간다면 우리내 삶도 큰물을 만나 바다로 흘러들어 것이다. 소소한 나의 삶, 평범한 우리네의 인생이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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